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한제국 황실 복원론 (문단 편집) === 황족의 정통성 결여 문제 === 왕실이나 황실의 복원을 운운하려면 제1조건으로 바로 혈통적 또는 계통적 정통성을 갖춘 황위 계승자가 있어야 한다. 계승자가 있어야 복원이 가능하니까. 그런데 현재 대한제국 황실 복원을 주장하는 자들에게는 혈통적 정통성은커녕 계통적 정통성마저 결여되어 황실 복원이라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군주제 국가였다가 공화국 체제로 바뀐 다른 나라들 중 입헌군주제가 가능한 국가로 거론되는 나라들은 실제 재위했다가 폐위당했거나 황위 계승자로 공식적으로 인정받어 정통성을 획득한 후계자와 그 일가가 있고, 그 외에도 계승의 정통성을 가진 후손들이 손으로 꼽기 어려울 만큼 많다. 계통적 문제를 걸고 넘어간다면 문제는 __'''대한제국 황실에는 정통성을 가졌다고 치부할 만한 인물이 없다는 것이다.'''__ 고종 대로 올라가보면 [[고종(대한제국)|'''고종''' 이형(高宗 李㷩)]]에게는 [[순종(대한제국)|'''순종''' 이척(純宗 李坧)]], [[의친왕|'''의친왕''' 이강(義親王 李堈)]], [[영친왕|'''영친왕''' 이은(英親王 李垠)]] 이렇게 세 명의 장성한 아들이 있었다.[* 원래는 [[완친왕]]을 비롯해 더 많긴 했지만 앞의 세 명을 제외하고는 전부 단명하였다.] ) 이 중에 용상은 [[순종(대한제국)|이척]]에게 넘어갔고, 이척은 후계자를 [[영친왕|이은]]으로 삼았으니 이척과 이은의 후손이 적법한 후계자라 할 수 있다. 이척에게 아들이 있었다면 당연히 이척의 아들이 황태자가 되었겠지만 이척에겐 아들이 없었다. 그래서 '이복동생'인 '이은'을 후계자로 삼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은의 후손'들이 바로 가장 정통성 있는 후계자인 셈이다. 이은의 아들 [[이구(1931)|이구]](李玖)가 있긴 했는데, '''이구에겐 아들이 없었다.''' 사후양자로 [[이원(1962)|이원]](李源)을 들이긴 했으나 현재 대한민국 법률상 __사후양자는 인정되지 않으므로__ 결국 [[영친왕|이은]]의 대는 끊겼다. 즉 계승순위에서 넘버 원, 투라 할 이척(순종)계, 이은(영친왕)계 모두 씨가 말랐다. 하다못해 여자 후손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이척은 자녀가 아예 없고, 이은은 아들 둘만 있었다. 이은의 장남인 [[이진(1921)|이진]](李晋)은 [[요절]]했고 차남 이구도 이척처럼 자녀가 아예 없었다. 결국 남은 건 이척과 이은의 이복형제인 [[의친왕|이강]]의 후손들 뿐이고, 그의 후손들이 가장 적법한 후계자라 할 만하다. 이척과 이은의 대가 끊긴 것과는 달리 이강의 후손은 상당히 많다. 이구의 사후양자가 된 [[이원(1962)|이원]]도 원래는 이강의 [[손자]]였다. 하지만 이강은 10명이 넘는 여성들로부터 '''21명'''(12남 9녀)에 달하는 자식을 낳았지만, 정작 [[의친왕비|정실]]에게서 본 적자는 없었다. 그나마 적자로 '인정받은' 아들이 이건(李鍵)과 이우(李鍝)인데, [[모모야마 켄이치|이건]]은 1955년 일본으로 완전 귀화하여 아예 떨어져 나간 인물이라 논할 가치가 없다.[* 백 번 천 번 양보해서 이건의 자손들 중에서 후계자를 찾는다 쳐도 적임자가 없다. 이건의 아들이 3명인데, 장남 이충(李沖)은 '''친자가 아니라고 밝혀졌고''' 차남 이기(李沂)는 새어머니 마에다 요시코의 남동생(...)으로 입적했다. 3남 모모야마 고야(桃山孝哉)는 아예 가문에 대해 들은 바가 없었으며 대한제국 황실에 대해서도 "나하고는 관계없다"며 선을 그은 상태이다.] [[이우]]는 [[영선군|영선군 이준용(永宣君 李埈鎔)]]의 [[양자(가족)|양자]]로 갔는데, 시대가 시대인 만큼 인정받지 않을 수가 없고, 심지어 사후양자도 아니니 문제될 것도 없긴 하다. 이우의 문제는 그의 형 이건이 일제에 순응한 것과는 달리 일제에 비교적 협조적이지 않았던 반면, 양부 [[영선군|이준용]]이 친일파라는 것. [[파양]]을 하려고 한다 쳐도 당사자인 이준용과 이우 모두 죽은 시점에서는 의미없는 이야기이다. 이우 슬하에 아들 [[이청|이청(李淸)]]이 있긴 하나 그의 외증조할아버지인 [[박영효]]가 친일파이기 때문에 둘 다 정통성이 결여된다.[* 다만 이우는 일본인과 결혼하는 걸 굉장히 싫어했고, 비록 친일파 집안이긴 해도 일단은 같은 한국 사람이었던지라 아버지 [[의친왕]] 역시 크게 반대하진 않았다. 그리고 이우의 결혼을 위해 [[박영효]]도 직접 나서서 일제 당국을 달랬기에 당시 정황을 본다면 역설적으로 사돈 쪽이 친일파였기에 일본인과 안 맺어질 수 있었다. 오히려 이우도 [[모모야마 켄이치|형]]처럼 일본 여자와 결혼했다면 정통성이 완전히 떨어져서 그냥 나가리가 되었을 것이다.] 심지어 이 두 사람만이 적자로 인정받은 것도 일제의 영향이다. 이렇게 보면 이강의 후손들은 결국 난립하는 형태라 누가 더 정통성이 높네 마네 할 처지가 못 된다. 궁여지책으로 "이강의 적장손([[孫]])을 앉히면 되지 않냐?"[* 조선의 왕위계승 법도에 따르면 당연히 [[적장자]]가 서열이 가장 높다. [[인조]] 때 [[봉림대군|효종]]을 왕으로 세우는데 반대한 이들은 "[[태자]]가 죽으면 [[태손]]이 있는 법입니다."라고 말했다. 즉, 적장자가 죽으면 [[차남]]이 아니라 그의 적장자인 적장손이 왕위를 잇는다. 이런 적장손이 없거나, 또는 그 정통성을 부정할 때에만 다른 방계 후손을 찾는 것이다.]라고 하면 좋겠지만 이것도 힘들다. 할아버지 [[의친왕]]마저도 임금이 아니라 임금의 아들이었을 뿐이고, 증조부 [[고종(대한제국)|고종]]은 가계도를 거슬러 올라가야 하니 너무 정통성이 떨어진다. 당장에 실제 좋은 사례가 있었으니 [[헌종(조선)|헌종]] 사후 왕이 된 사람은 [[철종(조선)|철종]]이었다. * [[철종(조선)|철종]]은 무려 5대조까지 올라가야 [[영조|임금인 조상]]이 나왔고, 그 때문에 철종은 정통성에서 많이 밀렸다. 5대손이나 4대손이나 어차피 그게 그거인데다, 철종 때와는 달리 왕이 죽고 바로 다음도 아니고, 1910년 대한제국이 망하고도 이미 '''100년'''이 넘은 마당이다. 누구를 데려놓든 결국 정통성 문제는 불거질 것이다. 어찌저찌 왕정복고를 결정한다 해도 누구를 보위에 앉히느냐를 놓고 논쟁이 벌어질 것이 뻔하다. 여기서 한 가지 상기할 점이 있다면, 공화정에서는 내가 대통령을 못해먹어도 내 자녀가 할 수는 있다. 하지만 군주제에서는 내가 왕이 아니면 나의 자녀는 당연히 왕이 될 수 없다. * 하지만 왕조국가에서는 내가 왕이 되면 아들→손자→[[증손|증손자]] 이런 식으로 대대손손 그 혈족이 왕이 되기 때문에, 극단적으로 보면 승자는 천년 만년 군주가 되고, 패자는 그저 황실 일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뿐이다. 정 옥좌에 앉고 싶다면 현 임금이 후손 없이 죽기를 바라야 한다. 게다가 조선시대의 왕족은 일정 대수 이상이 되면 왕위 계승권마저 사라져 버렸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충무공 이순신]]과 [[동명이인]]인 부장 무의공 [[이순신(무의공)|이순신]]이다. 이 무의 이순신은 [[양녕대군]]의 후손이다. 천신만고 끝에 황실 복원을 국민들이 허락한다고 쳐도 그 다음은 일원들끼리 야합을 하건 암투를 벌이건 해서 승자를 정해야 하는데, 민주적으로 하기 위해서 선거를 하기엔 이들 황실 일원들은 존재감이 없어도 너무 없었기에 "과연 제대로 평가받고 올랐을까?"라는 의문이 남을 것이다. 황실 구성원들이 야합이나 암투를 벌인다면 국민들은 다시 황실 복원에 등을 돌릴 것이다. 물론 오늘날의 한국이 있기까지 피땀 흘려 기여한 인물이 있다면, 혈연적 정통성과 별개로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다는 측면에서 나름대로 정통성을 얻을 것이다. 당장에 [[엘리자베스 2세]]의 아들인 [[찰스 3세]]는 선왕의 [[장남]]인데도 국민들 지지도가 별로여서 왕위가 계승되기 전에 "공화국 하자", "저 사람은 왕에 앉히지 말자." 하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었다. 현 시점에서 보면 국민들의 지지는 혈연적 정통성의 부족함을 어느 정도 보완해줄 수 있다. 문제는 국민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얻는 인물이 없다는 것. 당장 입헌군주제를 택하겠느냐, 공화제를 유지하겠느냐 결정하려면 투표를 해야 하고, 투표를 하려면 후보자는 적어도 현 대통령이나 총리보다는 지지율이 높은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과연 있을까?''' 적어도 임금을 칭하려거든 위기의 나라를 구하거나 사회 전반적인 문제들을 해결했거나 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그마저도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어야 하고, 그리고 그런 지지를 받고 스스로 왕이 되겠다는 의지도 있어야 한다. 문제는 황실 일원들은 정부고 군이고 이렇다 할 연줄이 없다. 즉, 당장 정부/국회/군에 가서 "나 황실 후손인 이 아무개인데 대한제국을 다시 세우려고 하니 협조해주시오." 하더라도, 절대다수는 "뭐 이런 미친 놈이 다 있어?"하고 무시할 것이다. 당장 황실이 복원되면 현 대통령부터 물러나야 하고, 국회의원들은 당 지도부라면 차기 대권이나 [[총리]]직을 노릴 텐데 다 무산되며,[* 물론 현재의 정치인들과 타협하는 방안도 있긴 하다. 예를 들어 대통령의 권한을 사실상 총리에게 이양하여 황제가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총리가 통치하는 입헌군주제를 채택하고 현직 대통령을 총리로 하여 현 정권에 단지 황실만 끼얹은 형태로 바꾸며 기존의 국회도 인정해주면 어느 정도 타협이 가능하다. 이러면 국회의원들도 지위를 잃을 걱정을 덜어도 되고 대통령 대신 총리직을 노리면 된다. 문제는 [[개헌]]인데, 국회에서 어찌저찌 개헌안이 통과되더라도 국민투표에서 '민주적으로' 전체 투표자의 과반이 찬성해야 정식으로 개헌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없다. 정말로 구 황실과 여당, 제1 야당이 합심하여 왕정복고를 국회 의결까지 끌고 가도 국민투표에서 막혀버리면 더는 방법이 없다.] 군 입장에서도 국민 대다수가 반대할 일인데 도와줘봤자 [[5.18]] 시즌 2를 찍을 것이다.[* 물론 국군이 민주정 이후 [[쿠데타]] 시도를 안 한 건 아니지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연줄이 있는 정권과 야합한 결과다. 그나마도 모두 미수로 그치고 전국민에게 공개되어 개망신을 당했는데 정권은 지지율이라도 있지 지지율도 없는 구황실과 야합해 쿠데타 시도하려고 해봤자 얻을 건 없다.] 말하자면, 대한제국 황실 후손은 남아 있으나 정통성 쪽에서는 단절되었다고 보면 된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황실 계승과는 거리가 먼 쪽이지만 [[전주 이씨]]였던 만큼 황실의 일원이 대통령이 된 선례가 있는 이상, 그들도 [[대한민국 대통령|선거로 용산 집무실에 입성하는 방법]]이 대한제국 황실 출신이 대한민국의 국가수반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